해외에 살 때 크레이그리스트를 이용해 집을 보러 가곤 했다. 내가 원하는 적당한 생활권에 지하가 아닌 월세가 싼 집을 보러 가면 늘 상상을 뛰어넘는 집을 마주하곤 했다. 집 전체 바닥에 비닐이 깔린 집과 거실에 2인용 6개가 놓여 있고 침대 칸막이를 돈을 받던 집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크레이그리스트 사용자는 너무 많아서 거기서 나와 상식 범위가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나는 다른 경로로 집을 찾기는 했지만 계속 크레이그리스트를 이용했다면 좀 더 이상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끔찍한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크레이그리스트를 배경으로 한 실화 기반 범죄 드라마가 궁금하다면 넷플릭스에 개봉한 영화 ‘크레이그리스트 킬러’는 어떨까.
‘크레이그리스트 킬러’는 겉보기에는 완벽한 의대생이 크레이그리스트의 에로틱 서비스를 이영래 협박, 공갈 및 살인을 저지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TV영화다. 주인공 필립 마코프는 실존 인물로 보스턴대 의대생으로 우수한 학생이며 친구들에게 인기도 높았다. 그러나 필립은 결국 보스턴 의대를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살인 및 강도 의혹이 제기된 뒤 학교에서 정학됐고, 이후 교도소에서 자살로 삶을 마쳤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영화 ‘크레이그리스트 킬러’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는 필립은 응급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메건’에게 반하고, 두 사람은 곧 연인이 된다. 메건은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이고 필립은 메건이 목표로 하는 대학 의대생이었던 만큼 두 사람은 같은 관심사를 갖고 함께 공부하며 진지한 사이가 되고 필립은 메건에게 청혼한다. 호감형 필립은 메건의 부모도 사로잡았고,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지만 필립에게는 어두운 비밀이 있었다.
필립은 메건 몰래 크레이그리스트의 에로틱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술버릇이 나쁘고 술에 취해 여자 동료를 위협하기도 했다. 심지어 필립은 선불폰을 구입하고 위조된 신분증으로 총기를 사는 일까지 한다. 메건은 필립이 자주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 점에 노심초사하지만 이내 다시 연락을 주는 필립의 모습에서 아무런 의심을 갖지 못한다. 그 사이 필립은 크레이그리스트 에로틱 서비스에서 만난 여자 ‘트리샤’를 찾아가 총기로 협박한 뒤 손을 묶고 금품과 돈을 훔쳐 달아난다.
이어 필립은 크레이그리스트로 마사지를 제공하는 ‘줄리사’를 찾아가 같은 방식으로 위협하지만, 줄리사는 끝까지 맞서다 필립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사망 사건은 언론에도 알려지면서 경찰은 두 건의 범죄 현장을 통해 범인이 칩거에 여성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런 추측과 모두 빗나가는 사람인 필립은 세 번째 범죄를 시도하지만 이번에는 밖에서 피해자의 남편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도망친다.
경찰은 선불폰의 발신지를 확인하고 필립이 사는 아파트에까지 수사망을 좁혀와 필립을 용의자로 확정한다. 필립은 메건을 속여 황급히 여행가는 척 도망치려다 잠복 중인 경찰에 들켜 붙잡힌다. 필립과 매간의 집에서는 수많은 선불폰과 숨겨둔 총이 나오고 매트리스 밑에서는 필립이 트로피로 숨겨둔 속옷이 발견된다. 메건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필립의 혐의를 인정받지 못해 무죄를 주장한다. 그 사이 필립은 구치소에서 운동화 끈을 이용해 첫 번째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결혼식을 2주 앞두고 메건은 필립을 찾아가 진실을 말할 것을 요청한다. 필립의 자백을 들은 메건은 필립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고 필립은 칼을 만들어 다시 자살을 시도한다. 필립은 벽에 메건의 이름과 애칭을 피로 적어 사망한다. 크레이그 리스트는 이후 에로틱 서비스를 없앴다.
텔레비전 영화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옛날 영화임을 감안해도 어딘가 화면이 낡고 중간광고 타임 때문에 갑자기 끊긴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저 그렇다. 그런데 다시 켜놓고 보다 보면 오는 길에 보게 되는 게 TV영화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너무 끔찍하거나 잔인한 장면이 나올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런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TV영화가 의외로 입에 맞을 수도 있다.
유능한 의대생에게 사랑하는 약혼자와의 결혼도 앞두고 있던 필립의 숨겨진 모습은 큰 충격을 주었지만 필립이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위장하더라도 그가 저지른 무서운 범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필립은 자신뿐 아니라 약혼녀까지 언론의 조명을 받게 해 사랑하는 사람을 피해자로 바꿔버렸다. 여기에 정당한 죄값조차 받지 않은 채 자살로 도피해 버렸고, 결국 필립은 자신이 원했던 최고의 의사가 아닌 크레이그리스트 킬러로 세상에 기억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