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화북 용유리 화산재 소재지 : 상주시 화북면 계석동길 23
용유리는 본래 화령현 지역이었으나 후에 상주군 화북면 지역이 되었다. 산천이 아름답고 용추(龍 洞)가 있어 용유동이라 하였다. 1914년 화산리를 합쳐 쌍용용소 서쪽 병천 위에 기암이 마치 용이 노는 형상을 하고 있어 용유리(龍里里)라 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용추 안쪽에 있는 지금의 상오리, 장암리, 용유리를 합쳐 용유동이라 하였고 산수가 좋기로 유명하였다.「정감록」이 말하는 피난처로 우복동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계석동은 늘안목(魚港洞)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속리산 사모봉 아래에 있는데 시내를 사이에 두고 장암리와 경계를 이루며 뒷골짜기에 문바위 절경이 있다.
이곳 계석동에 김해 김씨 상주 입향조 고려 삼중대광 김녕군 김해 김공휘 목경을 기리는 화산재가 있다. 북향 리고개가 우뚝 솟은 삼문인 숭덕문을 들어서면 한 층 높은 광장에 좌우에 동재와 서재 건물이 있고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 팔작지붕과지붕 화산재가 얌전히 정좌되어 있다. 두 처마에 중당 협실형으로 협실문은 3세의 청판 분합으로 관리의 편리함을 위해 퇴관에도 미닫이문을 달았다. 바로 뒤에는 내외를 모시는 사방 단칸의 영정각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고, 위패에는 고려 삼중대광 김녕군부 군신위와 군부인 안동권씨 신위라고 적었다. 동재 옆에는 재사의 창건과 중수에 힘쓴 후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재사에서 바라보는 좌우 백두대간은 황홀하다.
화산재 기문에 따르면 “공이 고려 충혜왕 때 관직이 삼중대광으로 김녕군을 봉하였으나 국사가 날로 문란해지자 정당문학 이공조년(1269~1343)처럼 나라를 바로 세울 것을 여러 차례 간청하였으나 왕의 마음이 결국 고쳐지지 않자 오히려 지조를 깨끗이 하고 속리산에 숨어 있다가 그 성묘를 하였다.
그러던 중 광복 후 병오년(1966년)에 부여족 대부 현봉씨가 종인 어떤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현옥 종인 및 제종과 함께 들은 바에 따라 찾아가니 그곳 사람의 말처럼 김승산 묘가 있으나 비가 파괴되어 일어나 볼 자료가 없었다. 마침내 무덤 옆을 파본 즉 숫돌이 있는데 형태는 형언할 수도 없고 다만 김녕군 휘목경이라 놓고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에 공묘임을 확신하고 경향 각처 일가에 통보하니 제족이 모여 보고 놀랐다.’고 적고 있는데, 그 묘소는 속리산 자락 장암산 견훤산성 내에 산성 입구의 큰 바위에는 ‘북유유삼보김공경’이라 새긴 묘표가 있고, 그 위의 묘소가 김해김씨 51세손 상주입향 조휘목경의 유택으로 뛰어나다.
견훤산성 입구에 『고려 삼중대광 김녕군 김해 금공 신도비』와 묘비가 수립되어 있으며, 후손들의 선익이 찬란한 화산재 기문이 있다.
상주 지역에 조상의 영정을 모신 문중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무관의 아내에게 그 남편의 위계에 따라 준 군부인이라는 봉작도 드물다. 화산재 주변에 문장대, 견훤산성, 오송·옥량폭포, 송석정, 용유·쌍용계곡, 강선대, 시비공원, 상오리송림, 장각폭포, 야영장 등 문화 유적과 볼거리가 많고 펜션과 용유계곡에는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피서객들이 넘쳐난다.

화산재

화산재 2

입구 숭덕문

영정각

김목경 부부의 영정

견훤산성 내의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