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천문학자는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심채경 지음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왠지 아이러니컬한 제목을 가진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천문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과 세상, 그리고 멀고도 가까운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문학자라면 천재일 테고, 일반인이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지만 이 책의 저자는 너무 평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다. 두 아이의 어머니, 비정규직인 행성 과학자, 그리고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는 그의 일상은 날마다 우리를 둘러싼 편견과의 치열한 싸움이랄까. 대한민국에서의 여성 생활과 전혀 다르지 않은, 오히려 더 소박하고 섬세한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도 걸어온 길이고 걸어야 할 길이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어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게 대체 뭘까 하는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 내지 않는,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일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곳에 끝없이 전파를 흘려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p13 ‘프롤로그’에서…이 책에서 천문학자인 저자가 보여주는 우주는 영화나 책 속에 나오는 우주와는 거리가 멀다. 스펙터클하고 스릴 넘치는 영화나 책 속의 과학자들과는 거리가 먼 매일매일 과학적으로 몰두하는, 이 책 속의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저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에 즐겁게 몰두하는 모습이 더 멋지다.

돌이켜보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은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남은 채로 버티는 데도 역시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사람들은 안 남은 것이 아니라 안 남는 것을 선택했으므로 남은 사람들은 안 간 것이 아니라 안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이제는 알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걸. 파도에 이기든 지든 보는 경험이 나를 숙련된 뱃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걸.새로움을 향해 출발해야 할 때, 엄청난 크기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는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위로하고, 쓰다듬고, 따뜻한 밥을 먹인 뒤 과감하게 등을 떠밀어 다시 세계로 돌려보낸다.여러 길로 갈라진 평행우주 속에서 용감하게 떠난 나와 용감하게 남은 나, 모두를 찬양한다. 그렇게 또 한 걸음 내딛는 훈련을 한다.31번 분야에서도 박사학위를 받고 공부를 계속하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다. 특히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렵고 보편적인 이해를 얻기 어렵다. 떠날 용기가 없어 그만두지 못했다는 저자의 고백은 처음에는 겸손해 보였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저자가 걸어온 길에는 수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이 참고가 되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그 길을 걸어온 저자에게 칭찬과 응원의 말을 보낸다. 그리고 그만두는 일에도, 지속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싶다. 어떤 선택에도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응원할 수 있도록.

이소연을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선발된 우주인이 갑자기 교체된 것도 곤혹스러운 데다 여성 우주인이 나서도록 하기 아까운 시선이 더해졌다. 여성 우주인이 남성 우주진 옆에 후보했다가 역사적인 발사 순간에 손뼉을 치며 환호해 주는 것이 알이드에게는 훌륭한 그림이었다. 다카야마가 이소연으로 교체되는 사건은 남자 자리를 여자가 대신한다는 충격으로 번졌다. 이소연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생명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주정거장에서 실험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전문가라는 점은 쉽게 무시됐다. 많은 사람이 놓쳤지만 우주인 프로젝트의 명목상 목적은 우주정거장 과학실험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주실험을 수행하는 사람이 마침 학계에서 과학을 하던 사람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운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p100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에 관한 글을 읽고 나는 부끄러워졌다. 나도 이소연 씨의 업적이나 자격 조건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예리한 저자의 글에서는 우리가 여성 과학자에 대해 얼마나 편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한 여교수를 은근히 존경하고 있다. 분야가 달라서 직접 만나서 얘기할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언젠가 그 학과의 대학원생을 우연히 만나서 “그 교수 어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남초사회에서 정착한 여성 과학자는 언제나 호기심과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어떤 경향인지, 연구 스타일은 어떤지, 강의는 어떻게 되는지, 요즘 주로 무엇을 연구하는지 그런 게 궁금했다. 하지만 제게 돌아온 대답은 그러네요.아프다고 학교에 안 올 때도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내 생각엔 정년을 앞두고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내 대학원생을 항상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교수님이시고, 고작 그런 눈길이라니. 아직도 젊은 대학원생의 시야가 그렇게 구태의연하다니 나는 정말 놀랐다.p107p108가 책에 나오는 저자가 평소 따르던 여교수에 대한 젊은 대학원생들의 시선과 평가는 그 학생 한 사람의 시선일 수 없다. 남초사회에서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본다. 교수가 어떠냐는 저자의 물음에 되돌아왔다.아이가 아프다고 학교에 안 올 때도 있거든요.”라니, 정말 한심스러운 시선이다. 언제쯤 우리는 이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은 먼 것 같다. 갑갑증이 나다

사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비정규직 행성과학자로 소개하지만 저자는 달 탐사 50주년이 되던 해인 2019년 <네이처>는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세계 천문학자 5명 중 한 명으로 저자를 지목했다고 한다. 현재 저자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국내 최초의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책 속에서의 저자의 삶은 영화나 책 속 멋진 과학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천문대에 가서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면서 행성을 직접 관측하는 일은 드물다. 행성 관측 자료는 대개 연구실 컴퓨터로 전송되기 때문에 현대 천문학자들은 주로 연구실에서 컴퓨터 속의 데이터와 씨름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달 탐사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국민에게 감사하다. 한국형 달 탐사선이 얻은 관측 자료를 전 세계와 나눌 차례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성과는 우리나라 혼자 잘해서 얻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사 이래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교육받고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고 참조하면서 쌓아온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지구상의 전 인류에게 우리 관측 자료를 내놓을 그날을 기다린다.p266 한국형 달 탐사선이 얻은 관측 자료를 전 세계에 나누어 전 세계를 향해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룰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 한국 측 관측 자료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스럽게 발표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국미의 한 사람인 나는 저자와 다른 한국의 천문학자와 여성 과학자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오늘날 과학자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해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질문을 바꿔 말하면 요즘 세상에 과학자는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계에서 권위 있는 상을 받거나 최고급 기술을 개발하거나 훌륭한 인재를 많이 기르는 사람 말고도 다양한 과학자가 있다. 나중에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 특출물이 없는 연구자들, 특별한 계기나 인상적인 에피소드 없이 과학자가 되어 그저 그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갈 사람, 그런 평범한 과학자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자신과 꼭 닮은 에세이를 쓰는 과학자가 한 명 더 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p271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사소한 에세이를 쓰는 과학자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에세이를 쓰는 여성 과학자인 저자가 꽤 매력적이다. 섬세하고 정확하며 사려 깊은 저자의 글은 깊은 공감과 울림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나는 저자에게 바란다. 저자의 이야기를 계속 쓰는 것을. 그런 저자의 장래를 응원해 본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