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생
인생은 나그네의 긴 곳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 구름이 흐르듯 감도는 길에, 정일란 두지 않는 것처럼, 미련과 두지 않는 자의 삶은 나그네의 도운이 흐르듯 정처없이 흘러간다.
인생은 벌거벗은 빈손으로 오고 빈손으로 가든지 강물이 흐르듯이 여울 가는 길에 그대로 두지 않을까 미련을 남기지 않을까 인생은 벌거벗은 강물 흐르듯 소리없이 흘러간다
최희준 노래 김석야 작사 김호길 작곡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 감미로웠다. 어린 나이에 가사 뜻도 잘 모르는데 그냥 그의 목소리와 노래가 좋았다. 그는 시종일관 감미로울 뿐 아니라 때로는 노래 속에서 웅규하며 “내가 곰이다”라고 외치기도 했고, 어떤 노래에서는 “에헤야, 그런데 우리 강산, 얼시그”와 민요와 비슷한 멜로디를 구성해 고르는 반전을 보이기도 했다.
아주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트로트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던 나이기 때문에 이미자의 구성된 봉척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던 그의 노래… 그의 노래가 재즈를 기반으로 한 스탠다드 팝과 스윙 음악이라는 것도 몰랐다, 사랑이 삶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당연히 인생의 쓴맛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날들이 모두 제멋대로 될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의 한 부분에 그대로 자리 잡은 가수 최희준 씨.
서울 법대 출신의 인텔리 가수, 키가 매우 작았다(검색해보니 키가 160cm였다고 하니 단신은 단신이었다), 그리고 부를 때는 눈을 감고 있던 가수 최희준, 목소리로 부른 게 아니라 가슴으로 불렀다는 최희준, 최희준 이름 석 글자에 들어 있는 기쁜 희가 무색하게 노래로 세상에 기쁨을 줌으로써 이름에 걸맞은 가수 최희준, 잠시 정계에 입문해 바람을 피우기도 했던 최희준, 한국 가요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전설적인 가수 최희준 씨.혹시 모를 하루였다.
이 나이가 들수록 전혀 가수 최희준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산다는 게 세상에 좀 ‘하숙’하는 격이야…”라고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걸 들을 때나 사는 데 몰두하다 문득 그의 노래가 생각나 아직도 생존해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그의 이름과 노래였기 때문에 이미 90세가 넘었거나 혹은 이미 타계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올해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니 안양에 계신 시어머니보다도 젊은(?) 나이에 놀랐다.
가수 최·희준(최·팔꿈치 유은, 1936년-2018년 8월 24일)서울 법대 졸업. 미 8군에서 노래하고”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으로 데뷔.진정 고비 신사, 하숙생, 팔도 강산 빛과 그림자 등 히트 곡.60년대를 풍미한 가수. 제15대 국회 의원, 한국 문예 진흥원 상임 감사, 한국 대중 음악 연구소장 역임.문화 훈장(2007년)수상, 제14회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 대상(2007년)수상.”저는 곰이다!으하하하…미련 가득하다 비웃어도 좋아~”너와 사랑은 옛날 이야기이지만 나의 마음 속에 너는 남아””팔도 강산이 좋아하고 딸을 찾아 백리 길, 팔도 강산을 끌어안고 아들을 찾아 천리 길~””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림자. 그대의 눈동자 태양처럼 빛나는 때 나는 너~~~””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돌아다녀도~””미련 없이 내뱉는 담배 연기 속에 희미하게 떠오른 그 여자의 얼굴을~~~””무슨 사정이 있을 것,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안 갈 길을 잃은 철새”밤은 깊고 낙엽은 쌓이지만 밤은 깊고 낙엽은~~~””너를 사랑할 때는 한없이 즐거웠고, 버려졌을 때는 한없이 슬펐다.”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서비스가 이 정도. 춥지 않나 뭘 먹을까. 털고 닦아 주고.생큐!”
정말 어릴 때 들은 노래지만 가사도 생생히 기억 나고 하나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그의 목소리도 귓전에 감돈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목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짐·리ー우스(JimReeves), 퍼트·브렛 분(PatBoone)만큼 아름다웠다 같다.
엄마는 최희준을 좋아해, 조영남을 좋아해?”다 좋아해. 최희준은 목소리가 부드럽고 조영남은 시원해서 서로 특색이 있어!” 어렸을 때 내가 묻자 친정엄마가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당신의 희망의 전부였던 큰아들의 학교 선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수 최희준을 각별히 좋아하셨던 것 같다.
잠시 그가 감미로운 저음으로, 사람의 좋은 표정으로 지금 이 순간 저 세상을 물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름다운 상상을 해본다.
그동안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노래로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수 최희준 씨. 푹 쉬세요.
2018년 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