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옆 블로그에서 제목만 보고 끌려서 예약해둔 책이야. 소설인지 자기계발서인지 종잡을 수 없는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보고 제목의 힘을 다시 한번 믿는다.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를 소홀히 하는 세태를 지적하는 책인지, 아니면 누구나 짐작하는 선입견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교훈이 담긴 책인지 다양한 상상을 하며 책장을 펼쳤다.

사실 작가는 진짜 천문학자였다. 천문학자는 하늘의 별을 보는 대신 인공위성이 보내주는 정보를 컴퓨터로 받아 그래프를 계산해 별을 분석한다는 내용이 나온다.책을 다 읽고 나니 중의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센스 있는 제목에 감탄하게 됐다. 세상 곳곳에 각자의 직업을 갖고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책이다.

작가가 박사 수료를 하고 대학에서 처음 교양 강의를 맡았을 때의 에피소드를 모은 챕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다양한 분야의 예체능 전공자들이 출석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연구실 밖에 처음 얼굴을 내민 과학자가 만난 다채로운 세상을 보며 과학자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별까지 거리를 구하는 공식(외장등급)-(절대등급) 수업에서 음수 음수 음수를 못하는 축구선수 학생을 보고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차지 못하는 자신과 무엇이 다른지 느꼈다고 한다.한 분야 조례가 깊은 교수도 전혀 다른 분야 전공자를 만나면 고개를 숙이는 게 맞다.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개소 같은 박사로 뭘 하는지 돈도 못 벌 텐데라고 말한다.적어도 한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이상 연구하고 평가받은 사람은 겸손하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또 주장한다. 대학이라는 곳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갈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대학은 학문의 장이다.공부를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지식의 괴로움을 젊음의 조각과 기꺼이 교환할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경제적 부를 축적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최근에 미국에 있는 사람이 한국 대학 등록금을 듣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너무 싸다는 얘기다. 쯔쯔쯔. 그래서 다 대학에 가는구나. 반값 등록금은 말도 안 된다. 대학 학비는 5배, 아니 10배로 올리고 대신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우등생에게만 파격적인 장학금을 줘야 한다. 정말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대학에 가자. 그 비용을 내더라도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 가자. 그래야 대학의 의미가 있다.듣고 보니 맞다.

p180. 우주탐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당장 상업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는 없기 때문에 대기업이 자금을 제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에 우주탐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국가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를 비전을 제시하는 자문단이 필요하다.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승인하는 국회,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해 공문을 작성하고 예산 집행 내역을 본다. 그리고 자신들이 낸 세금을 기꺼이 우주 탐사에 쓰도록 허용하고 공감하고 지지하며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 줄 국민이 필요하다. 네가 꼭 필요해. 천문학자가 아니어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 탐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나는 이 부분에서 왈칵 눈물이 났어. 나와 일면식도 없는 천문학자가 나에게 고맙다고 고백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의 월급을 주고 그의 인생을 응원한 느낌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6월 누리호의 2차 발사를 성사시켰다. 세계 11번째 자력우주로켓 발사국이 되면서 1t 이상의 실용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개국 반열에 올랐다.우주로 도약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 주는 일이라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누리호 1차 발사 때 실패했던 기억이 생생해 이번 2차 발사 때는 TV 생중계를 보지 않았다. 괜히 아이들을 불러 부끄럽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실패까지도, 실패할 확률까지도, 그 실패 확률을 예상하면서도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을 응원했어야 했다. 도전 자체가 빛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과학자들의 지식을 향한 탐구가 샘물에서 솟아오르듯 솟아오르기를 응원하고 관대한 눈빛도 장착해본다. 내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발견의 기쁨을 느끼고 누리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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