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여행을 떠나 시체를 만났습니다. 아오야기 아이토 – 빨갛다

동화 속 주인공들이 추리소설로 넘어갔다. 주인공 빨간 모자가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등장하는 것은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냥팔이 소녀를 비롯해 마법 요정, 사람의 말을 하는 늑대, 사냥꾼 등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캐릭터였다. 빨간 모자가 지나가는 길에는 어느 탐정과 마찬가지로 사건사고가 가득하다. 마차로 사람을 때려 죽이기도 하고, 밀실 같은 제과점에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여행 도중 시신을 만났다는 제목에 충실했던 셈이다.

시신과 사건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동화를 각색한 탓인지 분위기 자체는 무겁지 않다. 명탐정 빨간 모자라고는 하지만 빨간 모자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니 복잡한 속임수도 없고, 애당초 이 속임수도 어딘가 조금씩 동화적인 느낌을 준다. 어떤 마법을 사용하게 했다든가, 과자점의 요소를 활용했다고 하는 식의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했습니다’라는 문체도 한몫했다. 개인적으로 빨간 모자가 범인에게 당신 범죄계획은 왜 그렇게 허술하냐고 물을 때마다 조금 부끄럽지만 작가는 이 캐릭터를 계속 후원해 줄지 차기작도 집필 중이라고 한다. 참고로 작가의 전작인 옛날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어요란 동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공통점일 뿐 내용적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책 이중덮개 뒷면에 짧게 수록된 단편은 빨간 모자가 여행을 떠나기 전 상황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있었다.

귀여워 보이는 표지와 동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무척 신경이 쓰였던 책이었다. 초반 신데렐라와 함께 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가다가 사람을 때려죽인 뒤 시체 유기를 하는 장면까지는 흥미진진했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서 동화 속 캐릭터들을 모두 이렇게 소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앞부분보다 충격이 덜했다.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도 없고 스케일이 큰 것도 아니지만 소소하게 읽는 재미는 있었다. 앞에 뿌려둔 작은 재료들을 한 줄기로 엮은 이야기도 괜찮았고, 동화를 기반으로 마법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이 밖에 흉악범죄 얘기를 하지만 동화 속 인물 대부분이 10대 소년소녀인 만큼 약간 괴리감이 있는 부분도 있어 무거운 사건물보다는 가볍게 읽기 쉬운 책으로 보아야 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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