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지 않은 호칭에 대하여

좀 묶여 있었어. 첫째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누워 있을 때 조리원 방문 후 시댁과 친정이 따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말했다. 사돈 노인이 개미 아버지를 김씨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내가 이름 부르는 게 대접을 안 해주는 것 같대. 그리고 개미 아버지가 집에 혼자 있으니 먹을 반찬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 말을 옮기는 아버지의 얼굴은 조금 붉어져 있었다.대충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마 사돈에게 이런 기대를 했을 것이다. 출산한 며느리와 다시 태어난 아기 이야기. 혹은 그동안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소소한 근황 토크. 하지만 그런 TPO와 좀 맞지 않게 갑자기 ‘김서방’이라는 호칭 이야기와 ‘김서방이 먹는 반찬’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외롭고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다. 팬티까지 다려 입혔던 딸의 미래가 너무 걱정스러웠을 수도 있고.어쨌든 이후 아버지는 남편을 ‘김씨’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때마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그리고 친정과 시댁을 번갈아 다녀오는 명절 때면 그야말로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달콤한 게 남편이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시댁에서는 만나는 나를 너라고 했는데 왜 너만 김씨야? 이봐, 김상! 시댁에도 제 호칭에 대해 신경 써달라고 부탁해요.그러자 그때마다 남편은 정말 평온한 얼굴로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편하게 부르는데 넌 너무 예민하지 않아?” 정말 의문이다. 도대체 민감하다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네이버에서 며느리 호칭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일단 국어사전 탭에 ‘아들과 며느리를 부르는 말’이라는 글이 나온다.상황을 보면 너라는 하대는 정당한 호칭도 아니고 나와 비슷한 상황을 고민하는 며느리들이 현실에 꽤 많은 것 같은데 (그것도 숨어서 하는 말) 과연 뭘 예민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반대로 내 남편이 ‘김씨’ 대신 친정 부모님께 ‘너’라는 호칭을 받는다면 과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아~’라고 이름을 부르는 것도 불편하다고 태클하는 상황에 한 단계 더 내려간 하대에 정말 화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아니, 그보다 너라는 호칭을 실제로 한다면 우리 시댁 어르신들이 미간주름 하나 안 할 자신이 정말 있을 수 있을까. 부찌검이를 들고 쫓아오는 두 노인의 모습이 상상된다.재미있지 않은가. 시댁은 ‘도련님’, ‘아가씨’라고 존칭하면서 친정 쪽은 ‘처남’이라고 부르는 게. 사람 위에 사람이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는데 무슨 도련님하고 아가씨야. 한국은 호칭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 다 고쳐야지.”/ㅣㅅㅅㅅ이승주 “시댁에서는 만나는 나를 ‘너’라고 하는데 왜 너만 ‘김씨’야?”:공평하지 않은 호칭에 대해서

시댁에서는 만나는 나를 너라고 했는데 왜 너만 김씨야? 공평하지 않은 호칭에 대해 추석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 남편이 운전을 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소소하고 편안하게 사는 게 행복한 것 같다.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순간 그 말에 짜증이 났다. 편한 건 너만 편했어. 솔직히 명절 때는 아무것도 안 했잖아. 잘 먹고 잘 쉬다 오니까 당연히 기분이 좋겠지. 그런데 그런 생각은 안 해봤냐. 아내가 뼈를 깎듯이 같이 벌어서 울타리를 쳐주니까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 새벽에 홍두깨래. 솔직히 남편도 당황했을 거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ppss.kr

좀 연결되어 있었다. 첫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누워서 있을 때, 조리원 방문 이후 시댁과 친정이 따로 식사를 한 것이 있다. 그 자리에 다녀온 아버지가 돌아와서 말했다. “사돈 노인이 개미의 아버지를 『 김 씨 』으로 부르라고 말했다. 제가 이름을 부르는 것이 대접하지 않는 같다고. 그리고 개미의 아버지가 집에 혼자 있으니 먹을 반찬을 준비하라고 말했다.”그 말을 옮기아버지의 얼굴은 조금 붉어졌다.대충 그 장면이 상상이 갔다. 아버지는 아마 사돈에 이런 기대를 한 것이다. 출산한 며느리와 태어난 아기의 이야기 혹은 그동안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사소한 근황 토크. 하지만 그런 TPO과 조금 맞지 않게 갑자기”김·소 반”이라는 호칭을 인용”김·소 반이 먹을 반찬”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외롭고 당황했는지도 모른다. 팬티까지 다려서 입혔던 딸의 미래가 너무 걱정했는지도 모르고.아무튼 이후 아버지는 남편을 “김 씨”라고 불렀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은근히 화가 났다. 그리고 친정과 시댁을 번갈아 가는 명절 때는 그야말로 화가 하늘을 찔렀다. 단 것을 남편이니 그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남편의 본가에서는 만나는 나를 “너”이라고 말했지만 왜 당신만 “김 씨”이야? 어이, 김 씨!남편의 집에도 나의 호칭에 대해서 신경 쓰라고 부탁합니다.” 하면 그때마다 남편은 정말 평온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어른이 편하게 부르는데, 당신은 민감하는 게 아닌가요?”정말 의문이다. 도대체 민감하다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까. 네이버에서 “며느리의 호칭”라는 말을 검색했다. 일단 국어 사전 탭에 “아들과 며느리를 부르는 말”이라는 글이 나온다.상황을 보면”너”라는 하대은 정당한 호칭도 아니고 저와 비슷한 상황을 고민하는 며느리들이 현실에 꽤 많은 것 같지만(그것도 숨어 말한다)뭘 “민감하다”라고 하는지 모른다. 거꾸로 제 남편이 “김 씨”대신 친정 부모에게 “너”라는 호칭을 하시면, 과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 아~”과 이름을 부르는 것도 불편하다고 태클하는 상황에 한 단계 떨어진 하대에 정말 화나지 않는 자신이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너”이라는 호칭을 실제로 한다면 우리 시댁의 노인들이 미간 주름 하나 잡지 않을 자신이 정말 있을까. 브치켄이을 가지고 쫓아오는 두 노인의 모습이 상상된다.”재미 없어? 시댁은 “도련님”,”따님”라고 존칭하고 본가는 “처남”처제”라고 부르는 게. 사람 위에 사람이 없어서, 남의 밑에 사람이 없는데 뭐가 도련님과 딸이야. 한국은 호칭에서 완전히 바꿔야 한다. 전부 안 고친다고.”/ㅣㅅㅅ 이·승주”시댁에서는 만나는 나를 『 너 』 하지만 왜 당신만 『 김 씨 』이야?”:공평하지 않는 호칭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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