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천문학 혁명 때 우리가 잘 몰랐던 천문학 이야기 임진 용지음 16세기 천문학자 그룹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에 직면하면서 선택적 기로에 서게 됐다.첫째,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한 채 몇 가지 모순점을 제거하기 위한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의 부분적 응용, 둘째,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폐기하고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의 적극적 수용, 셋째, 철저히 기존 패러다임을 고수할 것, 특히 기독교 신학자들과 정통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은 17세기 후반까지 그들의 우주론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17세기~19세기 교회의 반응
처음부터 태양중심설과 기독교세력과의 논쟁의 요지는 지구 태양 행성의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는 사실적 물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즉 인간세계가 모든 만물의 중심이며 최우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 그럴 수 없다는 것의 대립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이 소개된 이후 티코, 케플러, 갈릴레이를 거쳐 샛별, 혜성, 목성의 위성, 금성의 위상, 태양의 흑점 등 여러 현상이 재해석되고 연구되자 교회 당국은 한꺼번에 밀려오는 반신앙적인 공격을 효율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다.